유수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자살에 참을 수 없는 심적 고통과 감정의 격랑을 겪다가 충동적으로 부의금을 들고 장례식장을 뛰쳐나간다. 그녀는 병원에 온 청산의 차를 발견하고 무작정 탄 뒤 청산에게 돈을 한 움큼 건네며 무조건 멀리 가달라고 말한다. 느닷없는 제안에 망설이던 청산은 호기심을 느끼면서 유수를 태운 채 서울을 떠난다. 짧은 일탈로 끝날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여정은 청산이 8년 전 떠나온 고향, 공주로 이어진다.
청산의 고향엔 개발된 모습과 예스러운 자연이 공존한다. 면면히 흐르는 금강 가에서 그들은 청산의 고향선배, 서울에서 온 무례한 중년 무리, 다문화 부부, 경찰, 주지스님 등과 만나며 다양한 삶을 목도한다. 그 안에서 청산과 유수의 마음은 차츰 안정되고 정화된다. 그러나 ‘스스로 그러한’ 자연 앞에서 청산과 유수의 분노와 상처는 순간순간 민낯을 드러내고, 결국엔 더 감출 수 없게 되는데…
빚쟁이들에게 쫓기며 근근이 자가용 택시 영업을 하며 살아가는 젊은 남자(김진엽).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방금 뛰쳐나온 젊은 여자(이설). 생면부지 관계인 두 사람의 우연한 동행의 여정이 <청산, 유수>의 내용이다. <방문자>로 주목을 모은 뒤, <나의 친구, 그의 아내>, <반두비>, <컴,투게더>로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온 완강하고도 우직한 신동일 감독은 전작들의 장점을 제각각 확장하되, 동시에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.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들의 만남 속에서도 마침내 공존과 화해의 감동이 생겨나고, 기형적인 슬픔과 사건들은 다시 삶의 장 안으로 겸허히 귀속되어 치유된다. 이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의 여정의 길은, 말 그대로, 청산유수, 막힘이 없이 유려하게 삶의 소중한 어딘가로 우리를 담담히 데리고 간다.
(2020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/정한석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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